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작위 요구자/유럽 (문단 편집) ===== 갈리시아 국왕 ===== ||<-4> [[파일:Coat_of_Arms_of_Galicia_(Spain),_16th_Century.svg.png|width=200]] || || 관련 칭호 ||<-3> 스페인 국왕[br]갈리시아 국왕 || || 작위 요구자 || {{{-2 (카를로스 정통주의)}}}[br]식스토 엔리케 데 보르본-파르마 이 보르본-부세트 || {{{-2 (카를로스주의)}}}[br]카를로스 하비에르 데 보르본-파르마 이 오란지-나사우 || {{{-2 ([[압스부르고 왕조]])}}}[br]도미닉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 || 전임자 || 하비에르[*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데 보르본-파르마 이 데 브라간사] || 카를로스 우고 데 보르본-파르마[* 하비에르의 장남. 카를로스 하비에르의 아버지.] || 안톤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안톤 마리아 프란츠 레오폴트 블랑카 카를 요제프 이그나츠 라파엘 미하엘 마르가레타 니체타스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 || 후임자 || || (카를로스) 우고 데 보르본-파르마 || 잔도어 합스부르크로트링겐 || || 계승 실패 원인 ||<-3> [[보르본 왕조|1700년 왕조 단절 및 교체]]{{{-2 (압스부르고 왕조)}}}[br][[페르난도 7세|1830년 국본 조칙]]{{{-2 (카를로스주의)}}}[br]1833년 왕국 해체 || [[갈리시아]]는 과거에 [[갈리시아 왕국]]이라는 이름의 독립국가였던 적이 있다. 알폰수 3세 대왕의 세 아들에게 갈리시아, 아스투리아스, 레온을 분할 상속하는 과정에서 독립된 왕국이 되기도 했으나 [[오르도뉴 2세]]부터 알폰수 4세까지의 20여년에 그쳤으며, 이후 갈리시아를 기반으로 베르무도 2세에 의해서 잠시 독립국이 되기도 했지만 베르무도 2세 자신이 갈리시아, 아스투리아스, 레온을 통합하자 다시 레온 왕국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후 레온 왕국은 페르난도 1세 이후 카스티야와 사실상 합쳐졌으며, 페르난도 1세의 상속 과정에서 포르투갈과 함께 가르시아 2세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페르난도 1세가 죽자 포르투갈 공작 누누 멘데스가 갈리시아의 왕을 칭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국력을 소진한 갈리시아는 가르시아 2세의 큰형인 카스티야 왕 산초 2세에게 공격을 받아 카스티야에 흡수당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산초 2세가 암살당하고 원래 레온의 왕이었던 둘째 알폰소 6세가 즉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전후에 포르투갈의 독립 여론은 점점 강해져 갔고 결국 알폰소 6세 사후 포르투갈은 갈리시아에서 떨어져 나가 반란을 일으켜 독립하게 되었다. 이후 갈리시아는 카스티야 왕국의 일부로 확정되었고, 갈리시아 왕 작위는 카스티야 왕에게 대대로 계승되는 명예직에 가까운 왕위가 되었다가 1833년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압스부르고 왕조]]가 단절된 1700년과 페르난도 7세가 자기 딸 [[이사벨 2세]]를 후계자로 정한 1830년은 갈리시아 왕국이 공식적으로 해체된 1833년보다 앞선 시기이므로, 압스부르고 왕조 왕위 요구자와 카를로스주의자들은 갈리시아 왕국의 해체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